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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을 쓰기전에 백줄을 읽고 독파하라"...
2017년 08월 22일 00시 06분  조회:1708  추천:0  작성자: 죽림

안도현 시론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안도현 시인이 시를 쓰고 읽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을 새롭게 연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이 중 한 사람인 안 시인의 안내를 받아 시와 연애에 빠져 보자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곧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이 세 마디의 가르침은 10세기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가 남긴 말이다. 자그마치 천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때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 가지의 순서를 편의대로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엔 실로 벅차기 짝이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나는 시를 쓰려는 당신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첫째, 술을 많이 마셔라. 그렇다고 혼자 마시면 안 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지루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일은 시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시인은 일상이라는 유리그릇을 박살내는 자가 아니다. 유리그릇에 빗금을 긋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거든 백 잔의 술을 마신 다음에 쓰라. 그렇다고 해서 술이 깨지 않은 비몽사몽의 시간에 펜을 잡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있어도 ‘취중진문’이라는 말은 없다. 나는 지금도 ‘주력(酒力)은 필력(筆力)’이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말로 학생들을 꼬드겨 술잔을 권한다.(단,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권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둘째, 연애를 많이 하라.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연애감정도 없이 시를 쓰려고 대드는 일은 굳은 벽에 일없이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 담쟁이넝쿨은 담하고 연애하면서 담을 타고 오른다.

 

 

셋째, 시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지 말고, 많이 생각하지 말고, 제발 많이 읽어라.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초보자가 쓴 시의 성패는 분명히 독서량에 비례한다. 여기에서 시를 많이 읽는다는 것은 쓰기의 준비 단계이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를 접하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선별할 수 없으며, 좋은 시를 쓸 수도 없다.(좋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자.)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는 그의 방대한 저서 <인정>에서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읽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삼대 이상 의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병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장 또한 그렇다. 반드시 오래도록 노력한 다음에야 능숙하게 글을 지을 수 있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세상을 다스리는 경학(經學)을 읽어서, 문장의 기초와 뿌리를 단단하게 세워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역사 관련 서적들을 두루 공부하여 나라와 개인이 흥망성쇠하는 근원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실용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경재서를 즐겨 읽어야 한다. …내가 말한 대로 해 본 다음에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밤, 짙은 나무 그늘과 가랑비 내리는 때를 만나면 문득 감흥이 일어나 시를 읊게 되고, 문장의 구상이 떠올라 글이 써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 자연의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생동감 있는 글을 짓는 문장가의 창작 활동이다.”

 

나는 시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목록을 받아든 학생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어느 세월에?’ 하는 표정들이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라고 설명한다. 시집은 악기처럼 비싸지 않고, 무겁지 않고, 고장이 나지도 않는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연주 연습을 하듯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가방에서 잠깐 꺼내 읽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렇게 필사한 시가 대학노트 세 권에 가득하였다. 지금도 문예지를 읽다가 좋은 시를 만나면 반드시 따로 옮겨 적어 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필사를 권한다. 아니, 거의 강요한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이면 수백 편의 시가 적힌 자기만의 시집이 오롯이 남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다양한 시를 읽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내가 요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거기에 들어간 재료와 음식의 빛깔과 요리방법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본 특이한 음식은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훌륭한 관찰의 소재가 되고, 그 기억은 또한 멋진 시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법이다. 곧 맛있는 시를 많이 음미해본 사람이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막상 주위에 시 한 편도 시집 한 권도 옆에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때는 귀를 열고 들으면 된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듣는 행위도 책을 읽는 행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형도는 어릴 적에 열무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새어드는 빗소리를 들었다. 황동규는 <풍장 27>(아래 시)에서 빗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 뜰 때 귀만 두고 가겠다고 한다. 손과 발과 입과 눈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오직 귀만 두고 가는 이 마음 역시 세상을 귀로 읽으려는 귀한 자세다.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

 

2. 재능 믿지 말고 열정을 믿어라

 

 

1970년대만 해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잡지가 흔하지 않았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로 다달이 오던 <어깨동무>는 몇 해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동무>가 든 봉투를 처음 개봉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정말 한 줄도 빼지 않고 읽었다. 집으로 잡지를 가져가서 읽는 날도 있었다. 물론 도서실의 ‘권력’을 이용한 불법대출이었다. 우리 집 건너편 방앗간 할머니는 혼자 살았는데, 내가 슬픈 이야기를 읽어주는 걸 좋아하셨다. 물레를 돌리며 명주실을 뽑는 할머니 옆에서 글을 읽어주면 할머니는 자주 슬피 우셨다. 그 덕분에 나는 누에고치 속의 번데기를 얻어먹거나 가끔 십원짜리 동전을 두어 개 얻을 수 있었다.

 

책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공부는 글쓰기였다. 독후감을 쓰기 싫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적도 많았다.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숙제로 쓴 일기를 5학년 여름에는 날짜만 바꿔 제출하기도 했다. 해마다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나는 시(운문)를 썼다. 시가 좋아서가 아니라 길이가 짧기 때문에 빨리 쓰고 뛰어놀기 위한 속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지에 처음으로 투고한 시는 심혈을 기울여 썼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실리지 않았다. 나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함부로 단정 짓고 말았다. 좋은 시를 고르는 선생님의 안목에 문제가 있다고! 그리하여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문예반에 들어가 시를 써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래에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교지에 적어도 시 한 편만은 꼭 실리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 삶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다시 그리면서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게 된 것은 30여 년 전, 거기서, 그렇게 비롯되었다.

 

천재 시인이 과연 있을까? 내가 보기에 천부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란 애초부터 없다. 어떤 시인의 재능에 대한 찬사는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찬사이지 인간으로서의 천재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천재 시인이라는 말이 랭보의 이름 앞에 붙는 것은 십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경악할 만한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이상의 앞에 이 말이 붙는 것은 그의 파격적인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천상병 시인을 가리켜 ‘천상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전에 보인 낭만적이고도 기구한 행적에다 그의 이름에서 연상된 말놀이를 결합한 결과이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다.

 

데이비드 베일스와 테드 올랜드는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 예술가가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한 에너지 소모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즉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배워 나가며 발전한다”는 대목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창작물을 통해 변화·발전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독자들을 감응시킬 뿐만 아니라 창작자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좋은 시든 나쁜 시든 ‘이미’ 창작한 한 편의 시에는 ‘앞으로’ 창작할 시의 방향과 원리가 다 들어 있다.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시인이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삶의 지침까지 들어 있기 마련이다.

 

시인이라는 존재의 엄숙성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시라는 양식이 원래부터 엄숙하고 고결한 품격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그리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예술 창작의 결과물인 시는 하나의 창조적 생명으로서 시인을 간섭하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나아가게 하고, 물러서게도 한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시인으로서 타고난 재능에 기대어 시를 기다리지 마라. 그리고 재능이 없다고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지도 마라. 그렇게 하면 시는 절대로 운명의 조타수가 되어주지 않는다. 시인 역시 시의 길을 여는 조타수가 되려면 선천적인 재능보다 자신의 열정을 믿어야 한다. 일찍이 이광웅 시인은 “뭐든지 /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했다. 열정의 노예가 되어 열정에 복무할 때 우리는 그 열정에 대한 신뢰를 가까스로 재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중에 ‘시는 감성으로 쓰고, 소설은 노력으로 쓴다’는 허무맹랑한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 무뎌진다’는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도 떠돈다.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선량한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이려는 헛소리들이다. 시를 쓰는 당신은 이런 말들에 귀가 어두워져 펜 끝을 흐리지 마라.

 

아무리 짧은 시 한 편을 쓰더라도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 것에 버금가는 시간을 투자하고, 자료를 취재하고, 공력을 집중시켜라. 감성이 무뎌졌다 싶으면 나이를 원망하지 말고, 부단히 감성을 훈련하지 않는 자신의 나태를 탓하라. 청년에게는 청년의 감성이 있고, 노년에게는 노년의 감성이 있는 법이다. 감성이란 또 여성의 전유물도 아니어서 남성적인 감성도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열정을 품고 감성을 연습하고, 훈련하라.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하나씩 肉身(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온갖 색깔을

고이 펼쳐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 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사랑이 흐르는

五線(오선)의 개울.

그곳을 건너는 和音(화음)을 뿜으며

꽃잎 빗장이 하나둘

풀리는 소리들.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별무늬같이 어지러운 꽃이여.

 

꽃대궁 앓는 목숨의 꽃이여.

 

이웃들의 더운 영혼 위에

목청을 가꾸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 개화 >

 

 

고등학교 때 쓴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십대 후반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기엔 시어에 좀 징글맞은 구석이 없지 않고, 완벽한 시도 아니다. 꽃잎이 막 열리는 순간을 그리기 위해 그 당시에는 말의 선택에 꽤 고심을 했던 것 같다. ‘육신· 색깔· 물빛·숨소리· 물관부·몸살·숨결· 떨림· 빗장· 목청’과 같은 명사들, ‘요동치는· 벗는다· 차오르는· 허덕이는 ·불러일으켜·뿜으며·풀리며· 흔들고’와 같은 용언들의 매혹에 빠져 미궁을 헤매듯 어지럽던 기억이 난다.

 

하나의 제재를 택한 뒤에 그것을 집중적으로 궁리하는 동안 감성은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다. 시어와 제목의 유기적 관계를 따져보고, 시어와 시어 사이의 충돌을 살피는 일, 시적인 대상과 자아와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들이 모두 감성의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뛰어난 요리사는 음식의 재료와 재료의 어울림에 예민하게 주목하는 자임을 잊지 말자. 특정한 제재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중국의 시인 아이칭(艾靑)이 그의 <시론>에서 한 말은 음미할 만하다.

 

 

“제재를 완전히 장악해야 비로소 예술세계의 통치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무릇 당신이 눈동자로 본 것, 귀로 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당신의 사상체계 속에 잘 짜 두어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명령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감각과 사유가 한 제재로부터 습격을 당할 때, 한바탕의 격투를 치르게 하라. 그 제재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게 하라.”

 

이 싸움의 과정은 몰입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몰입은 글쓰기의 중요한 바탕이면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온전하게 몰입할 때 온다. 시에 투자하는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몰입하는 시간의 깊이가 중요하다. 단 한 시간이라도 시에 집중적으로 몰입해 보라. 당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정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몰입을 열정의 이음동의어라고 부르면 어떨까?

 

///-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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